Vol 92. 전시저널 2020년 1~2월호(통권 제 92호)

2020.03.05


본질을‌ 작게‌ 생각할‌ 수‌ 있는‌ 차별성으로‌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창조적‌ 경험을‌ 만든다.

인터뷰‌ |‌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 발행인

디자인 하우스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1976년 국내 최초의 디자인 전문지인 ‘월간 디자인’ 발행을
시작으로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 전시사업으로까지 폭넓게 사업분야를 확장해온
디자인 하우스가 또 한번의 새로운 도약을 이룬 것이다.

미디어의 외길을 걸으면서도 국내 디자인 산업 발전에 앞장서 온 이영혜 대표는 ‘디자인이란 내가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일’ 이라고 정의한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자체가 바로 디자인인 것이다.

한국 디자인 사업을 이끌어가는 이영혜 대표와 함께 디자인의 가치,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경영,
전시의 영향력과 매체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최근‌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어떤‌ 의미를‌ 둔‌ 공간인가.
전시장 때문에 이사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일하던 곳도 오래된 학교를 고친 건물이라 출판사와 이미지도 맞고 나름의 장점이 있었지만 공간 운영에 한계를 느꼈다. 신사옥에는 작은 전시장이 있다.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디자인 관련 인사들을 초청하여 토크쇼를 진행한다. 전시와 관련된 다양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과 극복 과정, 디자인에 대한 생각 등을 말하기도 한다. 큰 전시장에서 해야 할 일과 작은 전시장에서 해야 할 일은 다르다고 본다. 작은 전시장은 사람과 사람의 대면이 더 가능한 공간이다.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사람을 잇는 보다 많은 활동들을 할 것이고, 이것을 또다시 디지털로 엮어 더욱 확산시키는 다양한 일들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참가업체의 콘텐츠를 가지고 또 하나의 미디어를 만들 생각이다.

디자인‌ 가치를‌ 중심으로‌ 한‌ 회사는‌ ‘경영’의‌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다른‌ 점이‌ 있는가.
당연히 다르다. 디자인은 사고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디자인이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만든다. 가령 책상을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나. 나는 가구 하나를 놓는 것에도 고민을 한다. 오피스에 방문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게 할 것인가, 그들의 시선을 어디에서 꺾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책상을 붙여 길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전부 디자인이다. 경영에서 좋은 디자인이 좋은 비즈니스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그 말에 더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디자인의 힘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다음으로 디자인은 아이덴티티를 만든다. 회사의 고정 컬러에 따라 사내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미지가 바뀐다. 노란색으로 꾸민 회사는 어딘가 젊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 같지 않나. 회사의 정체성에 맞게 디자인을 하는 것이고 이 디자인이 다시 회사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지막은 디자인적인 프로세스 관리의 중요성이다. 모든 의사결정의 과정마다 디자인을 고려하여 사고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디자인적인 의사결정의 중요한 핵심이다. 일하는 사람은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만큼 회사는 우리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그래서 회사의 공기까지도 디자인해야 한다고 본다. 공기 속에는 구성원들의 열정, 회사의 흥망,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등 모든 것이 들어있다. 정갈한 사무실 환경을 보면 그 회사의 정직성이 보인다. 우리 사옥에는 수십 년 동안 전시장에서 사 모은 물품들이 전부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구성원들이 오피스를 잘 꾸미는 이유에 대해 공감하고 회사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디자인 파워가 아닌가 싶다.

‘디자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되도록 쉬운 말로 정의하고 싶다. ‘내가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일’, ‘내가 누구인가를 뱉어내는 일’이 디자인이다. 개인으로 치환하면 내가, 회사 단위로는 우리 조직이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가를 밖으로 내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이 없이는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지 않나. 어떤 표현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 생각이 곧 디자인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4차 산업 혁명 등으로 변화된 시대에 앞으로 디자인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우리나라에는 자원이 없다. 석탄, 석유와 같은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다. 그 자원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크리에이티브 한 사람들이 남다른 생산력을 가질 때 나라가 잘 된다. AI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기술은 구매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기술을 가지고 응용을 하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놓은 베이직한 기술을 10원에 구매했다면, 그것을 50원이나 100원에 파는 것은 응용하는 아이디어가 해낸다.
숫자, 컬러, 크기에 대한 분류, 분석 등은 AI가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과거는 같은 물건을 대량생산하는 매스프로덕션의 시대였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것이 점점 세분화, 개인화 되어간다. 덩어리로는 절대 미래를 풀 수 없다. AI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들은 작게 쪼개진 것들을 큐레이션 하는 일을 앞으로 해야한다. 그 안에서 또다시 디자인의 힘이 중요할 것이다.

경영자로서‌ 새로운‌ 것을‌ 결정할‌ 때‌ 영감을‌ 얻는‌ 원천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들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이 일을 왜 하는가를 항상 생각한다. 즉 남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계속해서 찾으려고 한다. 남을 생각한다는 것을 좋게 표현한 단어가 바로 ‘배려’다. 사업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지만, 경영을 할 때는 배려심이 가장 중요하다. 배려 속에서 WANT(원하는 것)를 찾아낼 수있고 WHY(왜)를 찾아낼 수 있다. 비즈니스란 불편한 무언가를 해결해주는 일이지 않나. 널리 흩어져 있는 커다란 문제를 찾아 풀어주는 것을 우리는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대부분 차를 가지고 있는데 이 차를 가끔씩 다른 사람과 나누어 쓸 수는 없을까? 집을 비우는 기간이 많은데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이 집을 빌려줄 수는 없을까? 혼자 비싼 돈을 지불하는 불편함의 해결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다.불편함을 찾는다는 건 남을 잘 관찰할 때 가능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배려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라고 본다.

‘책‌ 몇‌ 권‌ 더‌ 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경영자로서‌ 이‌ 말은‌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라는 말 속에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과정, 모습, 재료, 컬러, 그립감 모든 것이 ‘어떻게’에 포함된다. 결국 ‘어떻게’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일에 가치를 부여한다. 종종 이윤추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당연히 한다. 많이 한다. 그런데 다른 곳과 달리 우리의 이윤추구는 이쪽과 이쪽 사이에 있다. 미디어(MEDIA)라는 말은 ‘미디움(MEDIUM)’, 즉 ‘사이’ 라는 단어에서 왔다. 어떤 생각, 어떤 물건, 어떤 브랜드, 어떤 장소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이것들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미디어는 그 사이에 위치한다. 사이를 잘 찾아내어 둘을 연결해주면 이윤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디자인‌하우스에는‌ 현재‌ 서로‌ 다른‌ 여러‌ 사업‌ 부문이‌ 있다.‌ 어떠한‌ 가치와‌ 철학으로‌ 연결되어‌ 있나.‌
우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에도 세월과 시간이 모자라다. 우리가 하는 일의 속을 꿰뚫는 실은 하나다. 미술 기법 중 점묘법이라는 게 있지 않나. 여러 가지 색깔로 점을 찍었는데 멀리서 보면 하나의 형태가 보인다. 나는 우리 회사의 사업을 점묘법 비즈니스라고 표현하고 싶다. 겉으로 보면 종이 매체, 전시, 디지털 매체 등 여러가지에 손을 댄 것 같지만, 각각의 영역이 다 연결이 되어있고 그 안에서 서로 시너지를 주고받는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가,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늘 염두에 두며 일을 해야 한다. 우리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 일이 업계에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남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지, 미디어로서 충실하게 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26년 전 리빙디자인페어를 최초로 시작할 당시에는 리빙과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니즈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것 같다. 전시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독자들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이끌고 싶다는 커다란 열망에서 시작한 일이다. 앞서 우리 사업을 연결하는 실(絲)은 하나라고 말했는데,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 그 실이 독자이다. 지금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많아졌지만 과거에는 독자들이 정보를 얻을 창구가 크게 부족했다. 책 한 권이 나오면 일주일 정도 편집부의 기자들이 문의 전화 때문에 일을 못 할 정도였다. 잡지에 나온 제품, 브랜드 등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그만큼 많았다. 독자들이 저 질문을 안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우리가 만드는 책은 종이이지 않나. 제품이란 눈으로 보기도 하고 손으로 재질을 만져서 느껴보기도 해야 하는데 종이로는 한계가 있다. 독자들에게 책에 실린 제품들을 실제로 소개하기 위해 무턱대고 전시를 시작했다.
다른 목적 하나는 해외보다는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 센스 있는 디자이너를 선택하여 어린이방, 리빙룸, 서재 등을 꾸미도록 맡겼다. 처음에는 당연히 힘들었다. 부스를 만드는 법도 모르는 참가업체들이 많아 하나하나 다 디자인해줘야 했다. 두 달 동안 밤을 새워 작은브랜드의 제품 소개 글을 직접 쓰다가 병이 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시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B2C로 전시를 시작했다. 전시를 통해 기업과 고객을 연결하는 일을 해온 것이다. 브랜드는 궁극적으로 고객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전시를 통해 고객의 반응을 직접 느끼는 것이 참가업체에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B2C 그 너머를 봐야 한다.
중요한 건 세계화다. 다만 세계화를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이 많다. 세계가 아무리 평평해졌다고 해도 인테리어는 여전히 그 나라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받고, 전시 실물을 이동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건너기 힘든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이 고민은 디지털로 해결되리라고도 생각한다. 영역으로 얘기하자면 크리에이티브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사고의 확장이 시장을 더 키우기 쉽다. 옆으로 넓혀 가면서 글로벌과 어떻게 조우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가령 제품이 아닌 공간을 이야기하는 전시가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이러한 전시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대규모가 될 수 있는가, 참가업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그들의 비즈니스에 실질적 이득을 줄 수 있는가. 그런 질문에 대한 준비가 더 필요하다.

국내외‌ 많은‌ 전시‌ 주최사가‌ 있다.‌ 디자인‌하우스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작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다. 우리는 매체를 만드는 곳이다. 매체에서는 취재하기 위해 하나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나. 누군가의 생각을 뜯어내고 다시 정리하는 일을 긴 세월 동안 해온 것이다. 그게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잡지 기사 하나하나를 만들듯이, 기사의 문장과 단어를 고심하듯이 작게 생각해야 한다. 브랜드가 지닌 속성,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그들에게 어울리는 전문가, 브랜드와 맞는 소비자 등을 다 맞춰줘야 한다. 난 작게 생각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 각각을 더 쪼개서 더 작게 만들면 난공불락이 된다. 오로지 영업만을 위해 듬성듬성 일하는 곳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겉으로 보면 비슷한 전시일지 모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본질적으로 DNA, 세포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함께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26년 동안 전시회를 개최해 오며 본 한국의 전시산업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많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제품, 품질 등 보이는 것을 향상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아직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가치를 높이는 일, 사용자의 효용을 늘리는 일, 삶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일. 그런 일들을 해야 할 때다. 정부, 주최사, 참가업체가 다 함께 신경을 써야 한다. 전시산업은 매우 복잡한 분야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은데 사람은 계속 바뀌고 준비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 전시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정부 윗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고 본다.
전시에는 선순환 기능이 있다. 개발도상국이었던 국가 중 큰 국제 행사를 많이 주최한 지역에 가면 사람들이 변화된 것이 느껴진다. 우리나라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민 의식이 높아졌던 것과 같은 효과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 큰 전시를 개최하는 나라들은 대규모 전시가 국가를 부양시키는 산업적, 문화적 힘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밀라노페어가 열리는 시기에는 그 도시의 모든 경찰들이 전시회의 일을 돕는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세수의 95%가 전시산업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전시가 도시와 국가의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국가를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디자인해야 하는 것이다. 택시 운전기사의 제복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와 퀄리티를 만들지 않나. 이게 디자인의 힘이다. 지속가능이라는 건 작은 노력을 매해 끊이지 않고 해서 하나 위에 다른 하나가 쌓일 때 일어난다. 작년에 했던 걸 리뷰해보고 잘못된 것은 떼어내고 잘한 건 확대해나가는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 회사도 그래야 한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이외에‌ 왜‌ ‘인천’인가.‌
며칠 전 이탈리아 대사관에 갔더니 ‘이탈리아를 기차로 즐기는 법’이라는 책자를 하나 주더라. 나는 그 지역이 너무 부럽다. 모든 도시가 아름다운 지역성을 품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도시 발전은 너무나 기형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모든 사람이 대도시로 나오면서 지역은 지역의 특성을 다 잊어버렸다. 서울을 빼놓고는 다 같은 시골이라는 것이 말이 되나. 이런 상황에서 지역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지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늘 고민하고 있다. 인천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지역적 측면에서 인천은 해외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온 개항도시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최대의 공항이 자리하고 있으며, 2시간 비행 시간 이내에 접근 가능한 많은 해외 도시가 있다. 지역성과 글로벌이라는 두 가지 이슈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도시적 특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개최하는 인천디자인페어는 서울의 리빙디자인페어를 그대로 가져가서 인천에서 똑같이 한 번 더 하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인천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빠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잡지와 전시의 가치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리라고 보는가. 
우리의 매거진 같은 종이매체도 전통 매체고, 전시도 굉장히 오래된 사업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잡지가 다 망해도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라는 말을 늘 한다. 나는 이 전통 매체가 역으로 미래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본다. 대신 지금보다 훨씬 가격도 비싸지고 퀼리티도 높아질 것이다. 더 귀하게 만드는 것들이 남게 된다. 면 대 면이라는 특성, 만질 수 있다는 특성, 직접 와서 볼 수 있다는 특성은 앞으로도 고유하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은 디지털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사업이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만 이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전시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데이터화시킬 것인가. 세계 사람들의 관심사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등의 일이다. 해외 대규모 전시회에 가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부분만 돌아보고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회 전체를 다 보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방문자들은 누군가가 나를 내 관심사가 전시된 곳으로 인도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지점에서 디지털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방문자라는 한 덩어리를 계속 소분해서 개인에게 맞춰가야 하는데, 이 개인화는 디지털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 데이터가 밑에서부터 정확하게 서포트를 해줄 때, 면 대 면에도 의미가 생긴다. 디지털을 어떻게 개발시키고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현재 전시사업 전체가 맞닥뜨린 숙제다.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경영인으로서‌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나가고‌ 싶은가.
‘작은 열쇠’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경영은 바로 이 작은 열쇠를 찾아내는 일이다. 열쇠는 작지만 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간이 나온다. 아늑한 침실이 나올 수도 있고 보물창고가 나올 수도 있다. 때로는 텅 빈 방이 나오기도 할 것이다. 그 열쇠를 만들고 찾아내는 것이 사업의 기본이다. 작게 생각하라는 얘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작은 걸 생각하면서 뒤에는 큰 방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경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식물에서 답을 찾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있지만 각각 자기 나름의 생존전략이 있다. 절벽에서 자라난 소나무 한 그루가 몇백 년을 사는 것을 종종 보지 않나. 크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그 나무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천적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 났다면 몸을 키우지 않는 것이 식물의 생존법이다. 어딘가를 희생하여 자신을 살릴 궁리를 하는 것이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나는 그런 데에 능하다. 작을 때는 작은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절벽 바위 위에서 자라난 소나무를 생각하며 헤쳐나가고자 한다.

‘숱한‌ 어려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과‌ 사업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우리 회사에 방문한 사람들이 모두 사장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누가 나라고 가르쳐주면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회사를 차린 것이 스무 일곱 때인데 그때 뭘 알았겠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며 내가 느낀 건 궁극적으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정했으면 한다. 누군가는 스타가 되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충실한 시청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무엇이든 괜찮다. 나는 그 중간쯤에 있고 싶었다. 남을 성공시키는 일을 내 업으로 삼고자 했다. 나에게는 ‘관찰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나는 지금도 길거리를 다니며 속으로 사람을 캐스팅한다. 저 사람 배우 시키면 되겠다, 저 사람 우리 매거진에 소개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산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소스를 찾아 편집장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나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이 선생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시련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를 성장시켜온 요소가 무엇이었는가 따져보면, 전부 나를 불편하게 하고 언짢게 한 것들에서 왔다. 이 세상의 나쁜 건 다 나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려고 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불쾌감만 주고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감정적으로 분노가 먼저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분노에 지지 말고 그게 오히려 나에게 좋은 힘이 되게끔 변화시켰으면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자신에게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해석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약을 줬는데 약인지도 모르고 뱉는 것은 바보가 아닌가. 쓴 걸 약으로 받아들일 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어디에나 돌밭이 있지 않나. 내 생각을 지키며 그 돌밭을 잘 건너는 것이 성공의 본질이라고 본다.